글 : 김승범
2018년 9월 8일 오후 일곱시. 아주 큰 사건은 없었던 것 같은 토요일 저녁. 서울 사람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서울 생활인구 데이터 중 '관내이동'과 '관외이동'의 하루치를 들여다 보았다. 데이터 소개는 지난 글의 앞부분에 적어놓았다. 사실 지난 글을 수정할까 하였으나 큰 맥락없이 그림들을 잔뜩 올렸더니 이미 올려놓은 그림들을 일부 내리기도 애매하여 그냥 다른 주제로 다시 글을 써본다.
토요일 저녁 일곱시에 서울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집에 있거나, 집 근처에 있거나, 지인들을 만나러 어딘가를 가거나, 가족과 함께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직장에서 일 하고 있거나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서울 밖이나 바다건너 어딘가로 갔을 수도 있는데, 서울 생활인구 데이터에서 이 부분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서울에 있던 사람들만 이 글과 그림들에 등장한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그리고 일반적인 토요일의 평균이 아니라 특정 날짜만 보았으므로 다른 토요일은 약간 달라질 수도 있겠다. 아직 개방된 데이터가 두 달 치 정도이므로 열 번 정도의 토요일 평균을 내 볼 수도 있겠으나, 재미로 해보는건데 그렇게 되면 약간 더 번거로운 작업이 추가되기 때문에 딱 하루만 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특정일의 특정 시간대라는 구체성과 특수성이 있는 데이터이므로 그것을 평균으로 뭉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토요일 밤의 스물 다섯장면
지난 글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이 데이터는 출발지가 거주지 자치구, 목적지가 당해시각의 행정동으로 된 일종의 OD 데이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각 거주지 자치구, 즉 출발지 기준으로 25개 그림을 일단 만들어봤다.
이를테면 바로 아래의 그림은, 강서구 거주자들이 2018년 9월 8일 19시에 있었던 행정동을 표현한 것이다. 강서구 경계는 붉은 선으로 표시했다.
각 행정동에 있는 인구 수대로 점들을 행정동 경계 안에 무작위로 발생시켜 찍었다. 점 하나는 사람 한명을 가리킨다. 가로 해상도 3840px의 이미지이므로 큰 모니터에서 큰 창으로 보면 좀 더 잘 보인다.
예를 들어 바로 밑의 그림에서, 강서구 거주자들은 강서구 이외에도 옆의 양천구나 신도림, 영등포, 홍대를 거쳐 종로, 이태원, 신림역 근처, 사당역 근처, 2호선 따라 강남역부터 잠실역까지 넓게 퍼져 있다. 그 시각 생활인구 데이터에는 총 217,615명이 집계되어 있고, 그 중 강서구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89,150명으로 전체의 41% 정도다.
참고로 2018년 9월의 강서구 주민등록인구 수는 598,416명인데(국가통계포털 자료) 다소 커 보이는 불일치(59만명과 21만명)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설명되어 있지 않다.
서남권 7개 자치구
서북권 3개 자치구
도심권 3개 자치구
동북권 8개 자치구
동남권 4개 자치구
아마 그림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자치구든, 많은 데는 항상 많고 적은데는 항상 별로 없군"
"자치구에서 가까운 데는 많고 먼데는 별로 없잖아. 이걸 꼭 데이터를 봐야 알 수 있는건가?"
사실 이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아주 정확한 평가다.
그런데 그렇게만 말하고 끝나면 약간 재미는 없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뜯어볼 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점들도 발견되고, 여기에서 데이터가 담고 있는 본격적인 묘미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는 많이 가지만 그 반대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지하철 4호선을 경계로 서쪽에는 동작구와 관악구, 동쪽에는 서초구가 있다.
동작구와 관악구민은 2호선을 타고 서울의 동쪽으로 많이 넘어가는데 서초구 사람들은 서쪽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다.
또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아니, 당연한거 아니야. 동쪽엔 '강남'이 있는데, 서쪽엔 뭐가 있다고 가나?"
4호선을 경계로 서쪽에도 '강남'만큼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2호선 따라 번화가는 있다. 신도림, 대림, 신림, 사당역 서편. 그리고 그 지역 사람들은 많이 이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초구에 사는 사람들은 서쪽 동네를 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소위 '핫'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토요일 오후에 어딘가 약속 장소를 떠올렸을 때 굳이 가깝지 않으면 잘 안 가게 되는 지역일 수도 있다. 혹은 음식점의 구성이 다를 수도 있고, 주로 이용하는 연령층이 다를 수도 있다. 그 '핫함'의 이면에는 사람에 따라 '가고 싶은 곳'이라는 기준으로 어떤 지역을 어떤 지역과 차별을 둔 평가가 있을 수도 있고, 혹자는 이런 현상을 부르디외가 말하는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싶을 수도 있다.
'어디서 어디는 가는데 어디는 안간다.'라는 결과만 단순히 인지하고 있다면 그건 그저 상식에 지나지 않지만, 왜 그런지 세세하게 이유에 호기심을 두어가며 추적해 갈 때부터 좋은 연구와 좋은 정책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관악구가 제일 잘 나간다
위의 그림들을 보면 자치구 바깥으로 많이 나간 곳들이 눈에 띄는데, 관악구가 유독 도드라지고, 노원구도 많아 보인다. 그래도 그림은 직관적 판단을 도와주지만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으므로 숫자를 다시 세 보았다. 거주 자치구별로 아래와 같이 합산했다.
역시 관악구가 바깥으로 가장 많이 나갔다. 전철도 2호선 하나밖에 지나가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강남으로 종로로 홍대로 진출했다. 내가 보고 판단했을 때는 그림에서 노원구도 많아보였지만 숫자로 따지면 성북구와 동작구 등 노원구 위로 여섯개나 더 있다.
그런데 관악구에 원래 인구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숫자를 보면 실제로 그렇다. 생활인구 기준으로 관악구가 거주지로 계산된 사람은 22만명인데 송파구 다음으로 많다. (통계청 주민등록인구를 보면 관악구의 인구 순위는 두번째보다 좀 더 밑으로 내려간다.)
사실 동작구가 제일 잘 나간다
이번에는 기준을 달리해보자.
자치구를, 인원수가 아닌 비율 기준으로 정렬해보았다. 분모를 자치구 거주자로 두고 분자에는 자치구 바깥으로 나간 사람을 두어 비율을 계산했다.
그렇게 보니 약간 달리보인다. 관악구는 많은 사람들이 나가긴 하지만 비율 기준으로 따져보면 전체의 중간 정도다. 오히려 동작구나 서대문구 거주자들이 토요일밤에 다른 지역으로 많이 나간다.
동작구는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거의 60퍼센트에 육박하는데, 사실 동작구의 번화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노량진이나 사당~이수 정도?
만약 동작구에서 행정을 하는 사람이 이런 내용을 인지한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아니, 우리 동작구민의 절반 이상이 주말에 다른 자치구에 가서 돈을 쓴다고요? 우리 구민들도 불편하게 멀리 가지 않고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도시 재생 사업도 좀 하고, 세수 증대도 이루어서 선순환을 만들어봅시다"
물론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진행한다면 좋은 정책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짧은 시간안에 특정 수치 증대를 목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글과는 거리가 멀지만 보조금 위주의 출산 정책이 비판받는 것처럼.
동작구민 입장에서는 급히 조성된 동작구의 애매한 장소에 가느니 홍대나 종로, 혹은 이태원에 가서 놀고 싶어할 수도 있다. 그냥 집 주변에는 공원이나 놀이터가 있으면서 조용했으면 좋겠고 슈퍼나 치킨집 세탁소 같은 것들이 갖추어져 있어서 걸어다닐만한 근린 소생활권이 잘 만들어져 있으면 되고, 오히려 바깥으로 나가는 교통편을 잘 뚫어주는게 좀 더 살기 좋은 동작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롯데월드같은게 들어오길 바랄 수도 있는데, 이건 주민들 의견도 들어보되 동작구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서울 전체 맥락에서 고려해야 할 문제 같다.
이 글에서 어떤 결론을 내려는 것은 아니라 제목 그대로 탐색이기 때문에 질문만 좀 더 던져보자.
송파구는 천국인가, 왜 벗어나지 않는가
위의 표에서 처음과 마지막을 비교해보면 약간 놀라운데, 같은 서울 안에서 동작구와 송파구는 거의 두 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송파구는 생활인구 합계에서도 26만명으로 가장 거주 인구가 많고, 통계청 주민등록 인구에서도 66만명으로 가장 많다. 그런데 대부분은 토요일 저녁에 자치구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33%만 바깥으로 나간다.
물론 거주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인원수만 따지면 바깥으로 6번째로 많이 나가는데, 자치구별로 '얼마나 많이'를 비교하다보니 비율을 보는게 더 적절할 것 같다.
왜 안나갈까?
토요일 밤에 바깥에 나가서 쓸 돈이 없어서? 이건 아닐 것 같고.
롯데월드와 올림픽 공원과 잠실야구장과 고수부지가 있어서? 어느 정도 상관 있을 수도 있다.
송파구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20세 이하의 비율이 높은데, 어쩌면 토요일 저녁에 인근 학원에 가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싱글남녀보다 어린 자녀를 둔 가족 구성원이 많아서 홍대나 이태원에서 술한잔 하기 보다 동네 인근에 가족 단위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자치구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 중 서울 바깥에 있는 비율이 워낙 높아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서울 생활인구 데이터만으로는 검증할 수가 없다.
다시 조금 위로 돌아가보자.
동작구민이 송파구민처럼 자치구 안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하려면, 이런 모든 부분이 고려되고 비교되어야 한다. 그냥 수치로 닮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동작구만의 특성이 있어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무엇인가 부족해서 개선해야 하는 것인지.
'빅데이터 시대' 라고 해서 데이터의 크기가 많이 강조되지만, 사실 데이터의 크기가 크든 작든, 가장 중요한건 충분한 여유를 지니고 데이터를 사려깊게 찬찬히 뜯어봐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 전국구와 지역구
노란 별이 나왔으니 파란 별들도 나올 차례다. 파란별은 목적지를 중심으로 출발지들을 취합한 그림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파란 점 하나는 선택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거주지 자치구들에 무작위로 발생시켜 찍었다.
위의 노란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구 집중 지역들을 골라봤다. 그림으로 슬쩍 보고 골랐기 때문에 일부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우선 소위 '전국구'들
서울 전역에서, 그리고 서울 바깥에서도 토요일 밤에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일명 '홍대'
'홍대에서 놀았다'는 문장을 엄밀히 따지자면 홍익대학교 캠퍼스에서 놀았다는 것이지만,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강남쪽에서 약간 뜸하게 오긴 하지만 그래도 서울의 대부분, 그리고 일산, 인천 분당까지 밝게 빛난다.
강남역 주변. 역삼1동(행정동)이 강남역 주변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하지만그래도 역시 서울 전역에서 온다. 홍대가 경기도 기준으로 서쪽 지역을 담당한다면, 강남은 수지에서 분당과 수원까지 연장된다.
서울 전체의 공시지가 1위는 명동의 네이쳐리퍼블릭. 그만큼 유동인구도 많고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다. 종로와 명동 역시 서울 전역에서 접근한다.
이태원1동은 행정동이 작아서 타지에서 온 전체 인구 수도 적은 편이다. 그래도 위의 노란 그림들을 보면 거의 모든 자치구에서 고르게 등장한다.
동남권 혹은 좀 더 넓은 지역
이 지역은 세 곳을 골라보았다. 그런데 동남권이라고 하기에는 좀 더 넓은 곳에서 접근한다. 서북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들이 온다.
삼성역 북쪽. 코엑스를 포함한다.
잠실역 부근. 롯데월드 절반을 포함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삼성역과 잠실역은 서울의 서남권에서도 많이 온다. 서울 이남지역 중 분당쪽에서도 많이 오는 곳이다.
고속터미널 주변. 동작구와 서초구에서 많이 간다.
서남권
이번에는, 사람은 많지만 서울 전역에서 온다기보다 그 주변에서 많이 오는 것처럼 보이는 지역. 역시 그림만 보고 눈으로 판단한 것이라 실제 수치 기준 분류에서는 달라질 수도 있다.
영등포역과 그 주변. 서남권 중 가장 넓은 영역을 형성한다. 광명과 부천에서도 많이 온다.
당산역 주변. 서남권뿐만 아니라 마포구와 서대문구에서도 많이 온다.
가산디지털단지. 이 곳은 인접한 서울내 자치구인 영등포구와 관악구보다 광명시와 좀 더 관계가 깊다.
오목교역. 가보면 사람은 많은데 이 데이터를 보니 주변에서만 많이 오는 것 같다. 그래도 비교적 넓은 네개 자치구를 포괄한다.
신림역 주변.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많이 간다.
사당역 서측. 역시 주변 지역인 관악, 동작, 서초구에서 많이 간다.
서북권
전국구로 분류한 홍대와 미처 못 올린 신촌을 제외하면 서북권에는 두드러지는 밀집지역이 별로 없다. 불광역 인근의 대조동 정도인데 주변에서만 사람들이 간다.
동북권
건대입구역 근처 번화가. 건대입구역 사거리 서남쪽만 있다. 그런데도 서울의 동쪽 절반을 포괄한다. 동작구에서도 많이 오는데 7호선 때문인 것 같다.
왕십리역 근처. 주변에서 많이 간다.
상봉역 근처. 동대문구와 광진구에서 많이 간다.
노원역 근처. 도봉구와 노원구, 중랑구에서 많이 간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현재가 이러이러하다'라고 늘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된다. 어려운 부분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
이를테면 가장 가까운 마지막 그림을 놓고 보자. 노원역 주변에는 사람이 많지만 정말 인근 사람들만 간다. 서울의 서남, 서북, 동남권보다 의정부시와 남양주시와 좀더 관계가 깊어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서쪽으로 중랑천을 건너면 창동차량기지 도시재생 사업이 한창이다.
답은 모르겠지만 질문을 던져본다. 여기에 무엇인가를 만들면 서울 혹은 남쪽으로 좀 더 먼 곳에서부터 사람들이 갈 것인가? 지금 현재 사람들의 움직임 패턴을 보면 그렇게 크게 바뀔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설만 잘 만들면 사람들이 올까? 왜 노원구에서 홍대는 가는데, 마포구에서 노원역은 거의 안가는가?
도봉구와 노원구 그리고 의정부와 남양주시 주민을 위한 시설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서울과 경기도 전체를 위한 시설을 만들 것인가?
물론 '홍대'영역이 10년 동안 지역구에서 전국구로 급격하게 성장한 것을 보면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도 없지만, 홍대는 관 주도의 도시재생 사업이 아니었다. 피상적인 소개만 읽지 말고 아주 조금만 더 알아본다면, 구겐하임 미술관 하나 잘 지어서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에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그래도 사업은 진행될 것이고, 어떻게든 변한다. 도시는 항상 변해왔으니까.
다만, 기왕 하는 것, 좀 더 잘해보려면 집행의 한 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계속 던져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움직이는가?"
"왜 그렇게 움직이는가?"
"그래서 다음 수로, 이 위치에 하얀 돌을 놓았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세 달전 토요일 밤 인구 데이터 탐색은 일요일이 끝나기 전에 여기서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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