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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진 흥신소

이 글의 내용은 사실 브이더블유랩에서 하는 일은 아니다. 그저 잉여스러운 개인적 '덕질'일 뿐이지만, 여러가지 지리정보를 다루면서 알게된 사실들이 사진을 찾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으므로, 혹시나 비슷한 일을 해야할 경우 참고가 되었으면 하고 기록해본다. 혹은 이런 덕후스런 작업을 해봤거나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이 한 사람쯤은 어딘가 더 있겠지라는 기대도 살짝 해 본다.

 

 

그럼 <옛날 사진 흥신소> 그랜드 오픈!

 

 

 

 

 

페이스북에는 Designersparty라는 사용자가 있다. 개인인지 단체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옛날 사진을 찾아서 시대별 컬렉션을 만들어 올리곤 한다. 페북 친구들의 '좋아요' 버튼 덕에 종종 내 피드에도 올라오는데, 어느 한가한 오후(였으면 좋겠지만 사실 이런 날은 별로 없다), 우연히 넘겨보다가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https://www.facebook.com/designersparty/photos/a.1573495646027646/1454000014643877/

 

캡션은 이랬다.

 

Seoul, Korea, 1972
photographer Unidentified
옛 기와집과 신형주황색 기와집. 아파트

 

호기심이 발동했다. 여기는 어딜까? 

어쨌든 서울이라니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특징은 산인데, 비슷한 산세가 드물다. 옛날 영화든, 사진이든 산세가 뚜렷하게 나와 있다면 대부분 찾을 수 있다. 인공지능처럼 우아한 기술을 쓴다면 좋겠지만 일단 '마우스 이리저리 스크롤'이라는 고전적 기술을 사용해보기로 한다.

 

자 그럼 무엇부터 해야할까?

격납고에 가서 전용기를 타고 서울을 한바퀴 돌면서 비슷한 산세를 찾는다.....면 신나는 일이겠지만, 일단은 (애증의) 브이월드를 누벼보기로 한다.

 

이미지 출처 : vworld.kr

 

 

일단 확률적으로 강북이라고 생각해보면, 몇 군데 후보가 나온다. 북악산 아래쪽으로 어딘가라고 생각한 후, 위의 사진에서 그림자 방향을 참고로 남북 방향을 찾아본다.

 

 

 

 

사진에 그림자가 뚜렷한 맑은 날이면 도움이 많이 된다.

 

 

 

 

그래서 산세가 길게 늘어진 세 군데쯤을 우선 찾아보기로 한다.

 

 

 

 

서대문쪽이 당첨되었다. 의외로 빨리 나왔다. 그런데 비슷해 보이지만 아직 확신하기는 어렵다. 

 

이 때 위 사진의 캡션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서대문 독립공원'

 

 

 

서대문 형무소는 지금도 남아있고, 1972년에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보니......... 있다!

 

사진의 오른쪽에 약간.

 

 

 

브이월드에서 3차원 건물을 켜본다. 서대문형무소가 보인다.

 

 

 

바로 이 부분.

 

 

보시다시피 두 사진에서 같은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산과 서대문 형무소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건 아주 운이 좋은 경우다.

 

하는김에 어디서 찍었는지도 찾아보기로 한다. 서대문형무소 건물의 찍힌 각도와 근경의 언덕들을 조합해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map.kakao.com

현재 무악동 주민센터 뒤쪽 인왕산현대아이파크 어딘가에서 찍은 것 같다.

위의 사진에서 1번으로 표시한 언덕부분이 아래 사진에서 1번으로 표시한 언덕부분인 것 같다.

역시 지금은 모두 재개발이 완료되었지만.

 

 

 

이렇게 첫번째 사진 찾기 끝.

 

 

 

 

몇장 더 넘기다보니 왠지 또 알 것 같은 사진이 보였다.

 

https://www.facebook.com/designersparty/photos/a.1573495646027646/1556282401082304/

 

 

이번의 캡션은 이렇다.

 

Seoul, Korea, 1972
photographer nick dewolf 

 

 

서울에서 저런 독특한 산세는 딱 하나밖에 없다.

인왕산

 

vworld.kr

역시 또 브이월드

정상 부근의 바위 부분이 인왕산을 서쪽에서 바라본 장면과 정확히 일치함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진에 아래와 같은 부분이 있는데,

 

아마도 한양도성일 것이라고 일단 생각해본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확률적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map.kakao.com

카카오맵에서 '한양도성'을 입력하면 위처럼 친절하게 분홍색 테두리를 그려준다.

 

인왕산을 동쪽에서 봤다면 한양도성과 겹치는 부분은 두 곳. 바로 아래쪽 기슭일리 없으니 위의 사진에서 동측 낙산 너머 창신동쪽이겠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보면, 드론이 없고 높은 건물도 별로 없던 시절 저런 구도가 나오려면 비슷한 높이의 반대쪽 경사면이 있어야 한다. 후보군을 찾아보니 위 지도처럼 두 군데 정도.

 

빨간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산의 능선이다. 

두 곳을 이리저리 살펴봤는데, 위쪽 삼선동이 아니라 아래쪽 창신동에서 찍은 사진 같다. 일단 이 정도 추측만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보자.

 

 

 

몇 장 더 넘기다보니 희한한 사진이 한 장 등장했다.

 

https://www.facebook.com/designersparty/photos/a.1573495646027646/1555504934493384/

마치 지구라트 같아 보이는데, 우리나라에 지구라트는 없었으니.... 아마도 땅을 고르고 한꺼번에 건물을 지을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파트도 보이는데 1972년에 저런 형상이면 시민아파트라고 일단 한번 생각해본다.

 

캡션은 이러하다.

 

Seoul, Korea, 1972
photographer nick dewolf 

 

어라라. 같은 사람이다. Nick Dewolf

좀 더 찾기 쉬워질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일단 Nick Dewolf로 구글링.

첫 페이지에 플리커 계정이 나온다.

 

70년대에 전 세계를 돌아다닌 멋쟁이 할아버지다. 그리고 필름을 모두 스캔해서 플리커에 올려놓으셨다.

 

<reel#31 japan, south korea> 발견

 

 

https://www.flickr.com/photos/dboo/albums/72157664536827362/page4

 

방금 나왔던 사진을 발견했다. 답사하면서 필름 몇 롤을 계속 찍은 것 같다.

덕분에 이제 사진의 전후를 보니 삼선동에서 넘어와서 창신동을 찍은 사진이라는게 좀 더 확실해진다. 

 

이제 아까 사진으로 돌아가보자.

 

https://www.flickr.com/photos/dboo/albums/72157664536827362/page4

 

분명히 창신동 어드메라는 것이 확실해졌으므로 이제 본격적으로 찾아보기로 한다.

원작자를 찾았으므로 designersparty의 캡션도 확실히 믿을수 있게 되었다. 1972년의 서울이라고 굳게 믿고 한번 다시 찾아보기로 한다.

 

1972년에 땅을 모두 정지해놓았으니 70년대에는 저 땅들에 건물을 지었겠지. 그렇다면 국토부에서 개방한 데이터인 GIS건물통합정보를 참고해보기로 한다. GIS건물통합정보의 건물 shp파일에는 사용승인연도가 붙어있다. 정확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맞는 부분도 꽤 있다. 

 

1970년대 지어진 건물만 발라내 본다. 그래서 다시 창신동을 보면, 거의 저 부분일 것이라고 심증을 굳힌다.

 

그래도 좀 더 확인해봐야겠지.

 

aerogis.seoul.go.kr 에서 1972년 항공사진을 찾아본다. 

 

aerogis.seoul.go.kr

보시다시피 땅 작업을 해 둔 부분이 그대로 똑같이 항공 사진에 남아있다. 시민아파트 각도도 정확히 일치!

심증은 이제 물증으로 굳어진다.

 

위와 아래의 사진에서 서로 매칭되는 부분을 파란색으로 표시했다. 그렇다면 찍은 위치는 위의 사진에서 대략 노란색 부분이 되겠다.

 

 

 

넥스트 도전 과제.

역시 Nick Dewolf의 1972년도 사진이다.

이하 사진 모두 Nick Dewolf의 것이다.

 

https://www.facebook.com/designersparty/photos/a.1573495646027646/2005305282846678/

 

일단 창신동 근처라는 확신이 있으니, 좀 더 수월해졌다. 

 

지형을 좀 살펴본 결과 창신동에서 북쪽 능선 너머 삼선동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사진에 크게 보이는 한 건물을 주목해본다. 학교 건물처럼 보이는데 혹시 지금도 남아있지는 않을까?

 

 

map.naver.com

찾았다. 한성대학교 진리관.

 

 

map.kakao.com

 

건물의 각도를 볼 때 아마 장수마을쪽 언덕에서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에는 아래 사진

 

 

창신동 지역의 경우, 연식이 좀 된 건물들이 많기 때문에 이 사진 중의 몇몇 건물은 살아남아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운이 좋게도 일부 건물이 완전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역시 반대쪽 경사면에서 찍었겠지. 아까 19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을 위한 기단 한가운데 텅텅 빈 큰 길을 걸어가면서 찍었을 것 같다.

 

 

 

그 다음.

 

 

흠. 이건 어디쯤일까.

 

앞뒤로 사진을 넘기다보니 머리에 짐을 인 아주머니 두 분이 계속 등장한다.

 

 

그렇다면 여기는 연속된 장소다.

 

계속 창신동이라는 가정하에, 첫번째 사진의 그림자를 보니 북쪽에서 남쪽을 보고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골짜기처럼 움푹 들어간 곳.

 

 

 

 

찾았다. 각각 1,2,3번의 지붕형태, 그리고 뒤쪽의 집들이 모두 일치한다. 한옥지붕보다 근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항공사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항공사진의 시기와 Nick Dewolf 사진의 시기가 약간 다른 것 같다.

aerogis.seoul.go.kr

 

 

아래처럼 세 장을 찍은 것 같다.

aerogis.seoul.go.kr

 

지금은 한옥은 모두 없어졌지만, 길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 구불구불한 경사로는 지나가 본 기억이 있다.

 

 

 

 

 

 

역시 Nick Dewolf의 이 사진은?

 

 

aerogis.seoul.go.kr

 

목욕탕 뒤의 보일러인지 물탱크인지 원기둥 형상의 무엇인가가 정확히 일치한다.

사진이란건 이렇게나 무섭다. 

 

 

 

 

 

아래 사진은 좀 많이 어려웠다. 역시 Nick Dewolf의 사진

 

 

몇몇 사진을 너무 시시하게 빨리 찾아버려서 이번엔 좀 더 단서가 많이 부족한 것을 골라보았다.

 

이 부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고, 

그림자 방향을 볼 때 서쪽에서 동쪽 정도를 본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만, 사진에서 보이는 한옥이 어느정도 규모가 있으므로 지붕의 형태로 찾기 시작했다. 완곡하게 꺾이는 길이 있고, 그로부터 시작되는 경사지형이라는 점도 참고했다.

 

 

 

드디어 찾았다.

 

대표
aerogis.seoul.go.kr

 

 

다른 사진들과 약간 멀리 떨어져있어서 쉽지 않았다.

 

aerogis.seoul.go.kr

 

언덕 위에서 꽤 망원으로 당겨 찍은 것 같다.

 

 

aerogis.seoul.go.kr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1992년과 1993년에 창신쌍용아파트 1,2 단지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옛날사진 흥신소>는 여기서 무기한 휴업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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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추가

 

생각해보니 2년 전 쯤 우연히 영화 <돼지꿈>(1961)을 보다가 이게 대체 어디일지 궁금하여 찾아본 일이 있었다. 역시 산세로만 찾았는데, 불광역에서 연신내 사이임을 알게 되었다. <돼지꿈>의 배경이 되는 동네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50년대 문화주택단지다.

 

영화 돼지꿈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s://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653

 

 

영화 인트로 부분. 평창동 초입부근에서 구기터널 방향을 바라봄

 

영화의 주요 배경. 불광역에서 연신내 사이쯤

 

영화의 주요 배경. 불광역에서 연신내 사이쯤